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자주 들었던 느낌은 두려움이었다. 나는 인류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라는 뼈아픈 역사적 경험을 통해, 단순한 역학관계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보편화된 인권이나 도덕, 윤리와 같은 가치 아래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진보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저자가 제시하는 구체적인 예를 살펴볼수록, 지리를 기반으로 형성되는 지정학적 안보, 힘의 논리가 현재 인류의 상황을 결정하고 있으며 앞으로의 향방 역시 결정할 것이라는 점을 실감하면서 약간의 무력감, 두려움을 느꼈다.
개인적으로는 서유럽의 이야기가 그나마 작은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제일 흥미로웠다. 서유럽은 유럽연합(EU)을 결성하면서 지금까지 유사 이래로 벗어날 수 없었던 “지리의 법칙”을 극복하려고 가장 부단하게 노력하고 있었다. 비록 프랑스와 독일의 생존게임과 같은 전략들이 어느 정도 숨어있기는 하지만, 세계대전의 트라우마를 벗어나 인류애를 회복하려는 매우 고무적이고 담대한 첫 걸음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2008년 그리스의 구제금융위기, 시리아 난민 수용의 문제, 영국의 브렉시트로 견고할 것 같았던 연합이 흔들리면서 – 역시나 – 지리의 법칙에 굴복할 것인지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계속 안타까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인류의 변화는 ‘지리’라는 원초적인 틀에서 벗어나기 어려울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아마도 그 사실을 가감없이 인지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축적해 놓은 인간의 존엄성, 인류애와 같은 근본적인 가치를 훼손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일인 것 같다.
한줄평
지리의 법칙을 무시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인류의 의지를 확인해보고 싶도록 하는 책
인상깊은 문구
“당신들이 이해하지도 못하는 문화에서 당신들의 가치가 먹힐 거라는 생각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겁니까”(p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