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평
어른들의 잔치에서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눈과 귀와 손과 발을 잃어가고 있다.
0. 도입
이 책은 한 변호사님이 추천한 책으로, 평소에 전혀 읽어보지 않는 분야의 책이었다. 아동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한 사람의 노력 이야기, 그것이 바로 이 책이다. 나는 사실 아동의 인권과 체벌에 대해 크게 인식하지 못 하고 살아왔다. 이 책을 통해서 내가 인식하지 못했던 일들에대해서 조금이나마 사고할 수 있는 시야를 얻게된것같아 다행이다.
1. 가족과 체벌
1.1 가족에게 아이란
최근 몇년간 정말 많은 놀이터가 사라지고 있다. 내가 어렸을때만 해도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두꺼비 집을 만들며 놀았다. 그리고는 손과 발은 흙 투성이가 되었다. 하지만, 요즘은 흙을 보기가 참 힘들다. 20년 전의 아이들이 놀이터에 가서 놀았던 반면 현재의 아이들은 놀이터 대신 학원에 가고 있다. 그들은 무엇을 위하여 놀이터대신 학원에 가는가.
수학 공식과 영어 단어를 외우는게 인생에서 중요한게 아니라 노는법을 배우고 친구들과의 유대감을 키우는게 인생에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은 몇이나 될까. 누구를 위한 고통의 시간인가? 어떤 부모들은 자신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식을 위해서라고 한다. 또 어떤 자식들은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부모를 위해서라고 한다. 이 경기에서 승자는 아무도 없다.
이 시대의 몇몇 아이들은 도통 자신들의 선택으로 인생을 살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것 같다. 어떤 부모들은 아이가 태어날 때 부터 부모의 계획대로 아이를 키워 나간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큰 기대를 하고 잘 키우려 한다. 그런데 잘 키운다는 것의 초점이 아이의 행복보다는 성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부모들은 말한다, “성공하려면 이렇게하고 저렇게해서 그렇게 되어야해” 도대체 그렇게 해서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행복한 아이의 인생을 원하는 것이라면 이런 행동을 할 수가 없다. 어린시절에 놀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경험을 해야할 나이에, 사회가, 세상이 원하는 인재가 되기위해서 살아가고 있다.
아이는 부모의 성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는 가족의 행복에서 태어나, 다시 가족의 행복으로 되돌아 간다. 아이를 소유물로 생각하지 말고, 부모와 동등한 존재의 가족 구성원으로서 인식해야 한다. 아이들에게는 부모든 국가든 누군가의 이해관계를 충족할 의무가 있는게 아니라, 자기자신의 자유와 권리와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다.
1. 2 아이에게 체벌이란
나는 2012년부터 7년간 과외를 해오면서 수많은 학부모들과 학생들을 만났다. 그런 일련의 경험들에 미루어 볼때, 부모가 강압적일 수록 아이의 자존감과 성적이 낮았으며, 부모가 자유로울수록 아이의 자존감과 성적이 높은 경향이 있었던것 같다. 물리적 학대만이 학대는 아니며, 자유와 권리를 빼았고 억압하는 것은 더 심각한 정신적 학대이다. 학대는 아이들을 아프게 한다.
체벌은 아이들에게 위계 질서를 각인시키기 위한 방편이다.
체벌이란 개념이 인류가 시작했을때 부터 존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체벌은 조폭, 군대, 전쟁, 폭력과 가깝다. 가족, 사랑, 교육, 보호와는 거리가 먼 개념이다. 가족은 어느 방향을 향해야 하는가? 가족을 전쟁터로 내몰지 않기를 바란다.
1.3 체벌의 존재 이유
부모는 왜 아이들에게 체벌을 할까. 많은 사람들이 이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적이 없겠지만, 언뜻 생각해보면 아이들이 말을 안 들었거나 잘못된 행동을 했을때 당근과 채찍의 채찍으로써 체벌을 한다. 그 행동을 하지 않게하고, 다른 행동을 하게끔 위한 것이다. 조금더 깊이 생각하면 부모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다.
왜 감정적으로 공감을하거나, 논리적 언어로 이해시키지 않고 체벌이라는 도구를 쓸까. 이것은 평등한 관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말 그대로 높은 지위를 이용한 강압적 폭력에 가깝다. 부모가 아이를 체벌하는 것은 부정하지 않으면서, 아이가 부모를 체벌하는것은 도덕에 어긋난다고 하지 않는가. 이것은 기저에 부모와 자식은 평등하지 않는 존재라는 전제가 깔려있다는 사고다.
저자는 글에서 한 학자의 말을 인용했다. 2011년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스웨덴 역사학자 라르스 트래가르드가 발표한 ‘스웨덴식 사랑 이론’이 그런 논리인데 아래와 같이 말한다.
진정한 인간관계는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고 불평등한 권력관계에 놓이지 않는
개인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다.
자율적이고 평등한 개개인 사이에서만 사랑과 우정 같은 인간적 교류가 이루어진다. 나는 체벌이라는 한 가지 예시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체벌이라는 물리적 폭력을 포함한 정신적 학대는 인간적 교류 없는 가족을 만들며, 가족의 행복을 빼앗아 갈 것이다. 그럴거면 아무것도 안 하는게 차라리 낫다. 아이를 끌고 가는 부모가 되지 말고, 아이와 함께 옆에서 걸어가고 넘어졌을때 일으켜 줄 수 있는 부모가 되자.
2. 비정상 가족
2.1 다른것을 틀린것으로 보는 사회.
살면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혼동하는 단어 중 하나가 ‘다르다’와 ‘틀리다’라고 느껴왓다. 영어로 “different”와 “wrong”이다. 이 두 단어를 혼동하는 영어권 사람을 본적이 없다. 단어는 소리로 나타나지만 그 안에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단어를 혼동한 다는 것은 명백히 그 개념을 혼동한다는 것이며, 대한민국 사람들은 이 두 개념을 혼동하고 있다.
왜 혼외자녀는 차별 받아야 하는가, 다르니까 틀린것인가? 종이에 쓴 사인이 한 사람의 생명의 가치를 바꾸는가? 결혼의 정상가족이라는 프레임에 갇힌 사고방식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다른것에 대한 불편함, 그리고 남의 시선에 대한 의식이 뿌리깊이 박혀있기 때문이다.
책 <사피엔스>에서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칠흑의 장막”이라는 것이 있다. “만약 당신이 이세상에 피부색, 국가, 소득, 사회계층이 모두 무작위적인 확률로 다시 태어난 다면, 당신은 어떤 세상을 원하는가?” 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차별이 없는 세상을 원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마음은 자신이 우월한 존재가 되면 바로 바뀌어 버린다.
2.2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회
남들도 다 하니까… 불안이 낳은 사교육 과열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일때, 남들을 따라한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이런 맹목적인 군중심리는 굉장히 큰 피해를 낳는다. 남들과 다른것에 대한 두려움이 나타난 하나의 예로, 자녀들을 어릴때부터 과하게 교육하는 것을 들 수가 있다. 이 군중심리는 가정의 경제적 풍요, 화목한 가정, 가족의 함께 보내는 시간, 아이들의 꿈, 아이들의 주체성을 빼앗아 간다. 그리고 심화되어 결혼과 출산에 대한 부담으로 작용하며, 청년들이 자녀를 낳는것을 꺼리게 되고 출산율을 낮추는데 한 몫을 한다. 물론 이런것 뿐만 아니다, 좋은 아파트, 좋은 차, 좋은 옷, 좋은 동네, 좋은 휴대폰 등등 남들과 다르면 안 된다는 것이 다 포함된다.
2.3 인종차별을 하면서 자신에게는 인종차별 하지 않기를 바라는 사회
저자는 책에서 한국도 인종차별공화국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인종차별 받는것을 매우 싫어한다. 간디의 이야기를 하나 하겠다. 간디에게 어느 부모가 와서 부탁을 했다. 아이가 사탕을 너무 자주 먹는데, 사탕을 먹지 않게 해달라고 말이다. 간디는 그 부모에게 한 달 뒤에 다시 오라고 했다. 한 달 뒤에 다시 왔을때, 간디는 이제서야 아이에게 사탕을 끊으라고 조언을 해줄 수 있었다고한다. 그 때 간디도 스스로 사탕을 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이 사회라는 틀속에서 살아가는 한, 우리가 사회에서 준 경험은 반드시 자신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나에게 바라는 행동을 당신도 남에게 하라.
3. 아동 인권의 과거 현재 그리고 우리 사회의 미래
3.1 조선 시대 때 부터 내려온 전통적 체벌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난 그림이 있는데 바로 다음과 같다. 김홍도의 ‘서당’이다. 그림은 아이들이 시험을 보고난 뒤 시험을 못 본 제자를 훈장이 회초리로 체벌을 한 것으로 보인다. 훈장님의 표정도 좋지 않고, 아이는 울고 있다. 다른 아이들은 체벌 당한 아이를 보며 웃고있다. 서당은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인데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에 그려진 것을 보면 흔히 있는 일이었던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교육기관에서의 체벌은 최소 몇백년을 지나 2012년에 법으로 금지됐다.
3.2 점차 사라지는 체벌 그러나 또다른 문제
학교에서 체벌이 법으로 금지되면서 체벌은 많이 사라진 듯 하다. 하지만 사실 체벌은 학교보다도 가정에서 더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맞고 부모에게 달려가 우는 아이는 그래도 부모가 달래주지만, 가정에서 맞고 학교 선생님에게 달려가기는 조금 어렵지 않은가. 체벌이 사라져야 하는 제 1순위는 가정이다.
“세대가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는 ‘부모의 헌신’과 ‘자식의 보답’구조는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기도 전에 부채의식을 갖도록 한다.
“아동인권운동에 앞장섰던 폴란드의 교육자 야누시 코르차크는 ‘세상에는 많은 끔찍한 일들이 있지만 그중에 가장 끔찍한 것은 아이가 자신의 아빠, 엄마, 선생님을 두려워 하는 일’ 이라고 했다.”
또다른 문제는 21세기 자본주의 시대의 투자처로 전락한 아이들이다. 자녀를 소유물로 생각하는 인식에 더해 아이들에게 가족의 성공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약한 존재인 아이에게 무거운 짐을 지어주는건 아닐까. 많은 부모님들이 자기자신이 아이였다면 원하는 가정을 자신의 아이에게도 주었으면 좋겠다. 공감 그리고 역지사지 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3.3 아이들이 행복해야 나라가 행복하다
아이들이 곧 국가의 미래라고 생각한다. 그런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으면 국가도 곧 행복하지 않게된다. 21세기가 되면서 더욱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후손들을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경향이 생겨가는것 같은데, 예를 들어 “나때만 아니면 돼” 라던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등 이다. 우리가 그런 선조의 후손이었다면 매우 화가나고 슬플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후손에게 그런 세상을 물려주지 말자. 행복한 아이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누구나 미소를 띠게 될것이다. 아이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는게 곧 국가의 종말과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우리의 미래에 행복이 사라지지 않도록 아이들이 세상에서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도록 자유와 권리를 지켜주자.
자녀를 소유하려 들지 말고 독립적 인격체로 보라
김희경
4. 마치며
나는 어린 시절 체벌을 거의 받지 않았고, 매우 자유로운 편으로 자랐다. 그래서 아동의 인권과 체벌에 대해 깊게 생각을 하지 못 했다. 하지만 대학생 시절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물리적 체벌은 보지 못 했지만, 정신적 체벌에 가까운 장면들을 다소 목격했다. 내가 본것들과 이 책의 내용이 합쳐지면서 , 사실 글을 굉장히 비판적으로 썼다. 하지만, 모든 부모들이 이 글과 이 책처럼 행동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저자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극단적인 부분을 인용한 것이다. 나는 우리사회가 체벌 문제를 비롯한 많은 점에서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나아지는 만큼 새로운 문제들도 발생하고 있는것 같다, 예를 들어 과보호와 과한 교육 등 말이다. 아무 생각 없이 남들을 따라할 것이 아니라, 어떤 방법이 나의 자녀를 지켜주는 방법인지 자신만의 철학을 가졌으면 좋겠다. 바쁜 현대사회에서 이런 생각을 할 틈이 없지만, 우연한 계기에 아동의 인권과 삶에대해 생각해보는 기회가 온 다면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다. 문제를 해결하는 첫 번째 방법은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니까.
5. 인용구
- 나는 가족 내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인 아이를 중심에 놓고 우리의 가족, 가족주의가 불러오는 세상의 문제들을 바라보자고 제안하고 싶어 이 책을 썼다.
- 나는 이 책을 통해 가족 안팎에서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에서 드러나는 인간성과 도덕성, 질서,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우리 사회의 통념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고 독자들에게 청하고 싶다.
- 채벌을 해도 된다고 보는 태도가 뿌연 안개처럼 사회에 깔려 있는 상황에서 아동학대를 뿌리 뽑을 방법이 있을까? 단언컨대, 없다.
- 소중한 대접을 받지 못하면 스스로를 그리고 다른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키우지 못한다.
- 아이들에게 체벌은 위계질서를 어린이에게 각인시키기 위한 방편이다.
- 이누이트족은 자녀가 성장해서 사고력을 갖추게 되기 전까지는 부모가 무엇을 가르치려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과보호는 거의 모든 가정이 자녀교육을 놓고 총력 질주하는 경쟁사회에서 남들이 하는 만큼을 해야한다는 불안함 때문이든, 자식의 성공률을 어떻게된 높이려는 열망 때문이든, 아니면 부모 자신의 성취욕구 때문이든, 요즘의 한국 중산층 가정에서 흔한 일이다.
- 기도를 할 때에도 남편과 자식들 말고 스스로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빌지 않는 엄마는 욕심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갈아 넣어 운영하는 가족의 성공을 꿈꾸는 야심가다. 이게 다 너를 위한거라고 하지만 사실은 엄마 자신을 위한 것이다. 엄마 꿈의 대리 실현자가 된 아이는 희망의 포로디.
- 부모로부터 과보호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청소년 일수록 낮은 자존감과 우울로 인해 무기력하고 복종적인 태도를 보인다.
- 요즘 수강신청에서부터 어느 동아리에 가입할 것인지까지 혼자서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대학생들이 많다는 것이다. 심지어 심리상담을 받으러 다음번에 올 것인지조차 엄마에게 물어보겠다라고 하는 학생들이 있다고 했다.
- 10대들의 하루 평균 학습시간은 6시간이 넘는다. 주 단위로하면 성인의 법정근로시간인 40시간보다 더 오래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 와중에 있던 놀이터도 없어지는 추세다. 2015년 1월에 어린이 놀이시설 안전관리법에 따른 안전성 검사를 통과하지 못한 놀이터 1,740곳이 동시에 페쇄됐다.
- 사회가 함께 도와줄 것이라는 신뢰 없이, 남을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따는 불안으로 모두들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놀지도 못한 채 일찌감치 떨려나거나 부모의 소망은 충족시켰을지언정 자기 인생을 위해선느 아무 결정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아이들에게 맘껏 놀며 자시 속도대로, 원하는 방향으로 힘껏 가보라고 격려해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가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
- 열한 살 소녀가 서툰 솜씨로 그린 한 장의 그림. 도화지의 위쪽 절반에는 주먹만 한 글씨로 다른 나라 사람을 차별하지 마세요 라고 쓰여있다.
- 한국은 인종차별 공화국.
- 일터는 부모가 늦게까지 일하기를 원하고 학교와 학원에서 아이들은 늦게까지 공부해야 한다. 그렇게 가족이 함께하는 소소한 순간을 놓치는 사이, 아이들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도 함께 사라져간다.
- 이 이론은 진정한 인간관계는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고 불평등한 권력관계에 놓이지 않는 개인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 자녀가 경쟁에서 이기기를 바라는 부모는 아이 대신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선택해왔다. 덕분에 아이는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가진 성인이 됐지만 결정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갖출 기회를 놓쳤다. 결국 스스로 어른이 되어 세상에 나갈 문 앞에 서게 된다. 아이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했던 일들이 사실은 아이에게 독이 되어버린 아이러니한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 자녀를 소유하려 하지 말고, 독립적인 인격체로 보라.
- 아동은 보살핌과 보호, 좋은 양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아동은 인격과 개별성을 존중받는 방식으로 다뤄져야 하며 체벌이나 다른 어떤 모욕적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
- 아동인권운동에 앞장섰던 폴란드의 교육자 야누시코르차크는 “세상에는 많은 끔직한 일들이 있지만 그중에 가장 끔찍한 것은 아이가 자신의 아빠, 엄마, 선생님을 두려워하는 일”이라고 했다.